왜 요즘 국채를 사들이는가
2025년 말,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국채 매입 급증’은 더 이상 단기간의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관투자자, 연기금, 중앙은행 그리고 ETF를 통한 자금들이 국채 시장으로 유입되며 수요가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안전자산 선호’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금리 전환 기대, 경기 둔화 우려, 중앙은행의 포트폴리오 재조정, 달러·환율 변수,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금의 운용 방식 변화 등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아래에서 그 배경을 다각도로 해부해 보겠다.
금리 사이클의 전환 기대 — 자본차익 매력도 회복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금리 피봇(pivot) 기대’다. 2025년 들어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신호를 점점 더 내놓으면서 장기 금리의 하락 가능성이 커졌다. 금리가 내리면 기존에 발행된 고금리 채권의 가격은 상승한다. 따라서 금리 전환이 임박하다는 시장 기대가 확산되면 기관들은 국채를 미리 사들여 자본차익을 노린다. 이 과정에서 장기물에 대한 수요가 특히 강해지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경기 둔화와 안전자산 수요의 동시 확대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기업 실적 불확실성이 확산될 때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 국채는 정부신용 기반의 ‘현금 대체’ 자산으로서, 경기 약화 시 자금이 몰리는 전통적 수단이다. 2025년 하반기 이후 경기 모멘텀 둔화 신호가 잇따르자 위험자산에서 빠져나온 일부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흐름은 특히 연기금·보험사처럼 장기 안정 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에 의해 촉진됐다.
중앙은행·공식부문의 포지셔닝 변화
몇 년 전부터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 다변화와 재무 리스크 관리를 위해 포지션을 조정해왔다. 금 매입이 크게 늘어난 반면, 일부 국가는 안전·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국채 보유를 늘리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공식부문의 자금 이동은 민간 시장의 심리에 강한 신호를 주며, 글로벌 국채 수요 기반을 탄탄하게 만든다. 또한 일부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산은 달러 의존 축소 움직임과 맞물려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 인식 변화를 촉발한다.
ETF·패시브 펀드로의 자금 유입 가속화
개별 기관뿐 아니라 ETF를 통한 국채 수요가 크게 늘었다. 2025년 들어 채권형 ETF의 순유입이 가속화되면서 소액 투자자와 기관 모두가 시장에 쉽게 접근해 대규모 자금 이동이 발생했다. ETF는 유동성과 즉시 매매 가능성 때문에 변동성 높은 시기에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장외 채권 시장뿐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한 수요도 국채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디지털자금의 T-bill 노출 확대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성장도 의외로 국채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나 암호화폐 거래소가 법정화폐 유동성 관리를 위해 단기 미 국채(T-bills)와 같은 초단기 안전자산을 보유하면서, 가상화폐 시장의 자금 흐름이 단기 국채 수요로 연결되고 있다. 국제 금융 당국과 IMF도 이 현상을 주시하며 스테이블코인의 단기국채 노출이 글로벌 자금 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해 왔다. 이 구조적 변화는 전통적 자금공급자에 더해 새로운 수요층을 만들어냈다.
지역별 차이: 선진국 안전자산과 신흥국 수요
지역별로는 차별화된 흐름이 관찰된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안전자산 선호와 ETF 유입이 맞물려 트레저리(미국국채)와 유로존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일본은 JGB(일본국채)에 대한 입찰 수요가 강하게 유지되며, 일부 경합시에는 높은 응찰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신흥국은 외환보유 보강, 수입 대체, 국제결제 의존도 축소 등을 위해 국채와 금·달러 보유를 병행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지역 패턴은 글로벌 자금의 방향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재정·부채 우려와 ‘질적 안전’에 대한 재평가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재정적자 확대는 장기적으로 국채의 리스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현금 대체’ 수요가 더 우선시된다. 동시에 일부 투자자는 전통적 안전자산 외에 금과 같이 ‘비법적·비동결’ 자산을 병행 보유하면서 리스크 분산을 추구한다. 이런 복합적 포지셔닝은 국채 수요를 유지시키는 한편, 금과의 동시수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응전략 및 체크리스트 — 투자자 관점에서 할 일
- 금리 사이클과 중앙은행 신호를 최우선으로 모니터링하라. 금리 피봇 기대가 수요의 핵심 동력이다.
- ETF 유입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라. ETF 자금 흐름은 단기 수요 변화를 빠르게 보여준다.
- 만기 분산(듀레이션 관리)을 적용하라. 장기물은 금리 하락 시 큰 이익을 주지만 반대로 리스크도 크다.
- 스테이블코인·디지털자금 노출을 점검하라. 암호시장과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면 단기 금리·수요 변동을 예측하는 데 유리하다.
- 지역별 리스크를 고려하라. 달러·엔·유로의 흐름이 국채 수익률과 환차익에 영향한다.
- 포트폴리오 내 금·채·현금 비중을 재조정하라. 중앙은행과 기관의 동시 매집은 금과 채권을 함께 보유하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 유동성·세제·거래비용을 점검하라. ETF와 직접 국채 매수의 비용구조와 세제 차이를 이해해 최적의 투자 수단을 선택하라.
전세계적으로 국채 매입이 늘어난 현상은 단일 원인보다는 여러 구조적·순환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다. 금리 전환 기대, 경기 둔화, 중앙은행의 전략, ETF와 디지털 자금의 흐름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면서 국채는 다시 한 번 글로벌 자금의 피난처이자 기회처로 떠올랐다. 투자자는 이 복합 신호를 정확히 읽고, 만기·비중·수단을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